무용한 나에게

제목: 무용한 나에게: 단편 소설

시리즈: 해당 사항 없음

장르: 슈퍼내추럴 판타지


소개:

마법사의 타(他)자아 조각상에게는 삶의 목표가 단 하나다. 바로 마법사가 원할 때 그분이 되어드리는 것이다.

그렇다면 마법사의 타자아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조각상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.

아니면 무용함에도 기능이 있는 걸까?

*암울한 세계에서 피어난 따스한 초자연적 인연에 관한 단편 소설.

첫 부분 발췌:

나는 마법사님의 타(他)자아다. 정확히는 많은 것들 중 하나다. 그러니까, 적어도 나는 나를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. 그분이라면 “넌 내 타자아 중 하나였지.”라고 말씀하시겠지만.

왜냐하면 난 매개체로서 그분을 보내드리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. 이제 난 그분에게 그저 조각상일 뿐이다.

세 번의 보름달에 걸쳐 기도드린 특별한 점토로 만든 손바닥 길이의 장식품. 표면은 대체로 매끄럽지만 수십 년 쓰임에 여기저기 흉 진 물체. 눈에 보이는 그분의 모든 특징을 담기 위한 정밀함의 결정체. 그분의 그윽한 보랏빛 눈, 장려한 검은 망토, 윤기가 흐르는 긴 회색 머리카락까지도. 그리고 특히나, 언제까지고 시들지 않는 고요한 얼굴까지도.

그분처럼 나도 절대 시들지 말았어야 했다. 나는 언제까지고 그분의 타자아로서, 어디에나 놓일 수 있는 매개체로서 기능하며, 그분이 부르시면 깨어나고 늘어나 그분이 원하시면 언제든 인간의 형상을 한 마법사님이 되었어야 했다.

우리 중 누구라도 언제든 그분이 될 수 있었다. 그분은 우리를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하수관에 놓으시거나, 거친 벽 틈새에 욱여넣으시거나, 검은 까마귀 등에 매다시고는 하셨다. 그저 그 새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, 그럼으로써 그분을 어디로 데려갈지 보시려고 말이다.

나는 물론이고 다른 많은 조각상들을 써서 마법사님은 이성의 신봉자와 과학의 숭배자로 넘쳐나는 세계를 안전하게 여행하셨다. 특이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국경 순찰대나 정부의 눈에 띄신 적이 없으셨다. 여권도 없으셨고, 그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으셨으며, 그 누구의 아랫사람도 아니셨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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